디지털 혹세무민

Skeptic | 2009. 11. 19. 13:58
Posted by oveRock

화장지와 형광증백제
어제 종일 감기몸살을 앓고 나니 오늘 점심은 입맛도 없더라.... 해서 불꺼진 사무실에서 인터넷 서핑이나 하고 놀던 도중 다음과 같은 블로그 기사를 읽게 되었다.

헉, 우리집 휴지 실험해봤더니…댁의 휴지는 안녕하세요?

뭐, 화장지를 더 고급스럽게 보이게 하려고 형광물질을 도포했다는둥, 형광물질이 인체에 치명적인 해가 될 수 있다는둥 하는 이야기는 비단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니 일단 넘어가자. 그런데 실험 방법이.... 응?

요!오!드! OTL
포스트상에서 말하는 실험 방법은 꽤나 간단하다. 1)실험 대상인 화장지를 준비 2)요오드를 화장지에 떨어뜨리거나 화장지를 요오드 용액에 담근다 3)요오드 용액 색깔이 검푸르게 변하면 형광증백제 살포임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소린가?
소량의 요오드가 용해된 요오드 액은 녹말분과 반응하여 검푸른 색을 나타내는 특성이 있는데, 대다수의 화장지에는 녹말분이 들어 있으므로 요오드 용액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니 괜히 애꿎은 휴지에 요오드 발라가며 분개하지 말고, 오늘 저녁 식탁에서 밥알을 정성껏 으깬 다음에 요오드 용액을 붓고 '으악! 밥에도 형광증백제가 있어 ㅠㅠ'라며 절규나 하시기 바란다.

맹신의 오류
실상이 이러함에도, 정작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블로그 포스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추천수가 쭉쭉 올라간다. 중간중간 실험 방법의 오류를 지적하는 댓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방문객들이 '아 무섭네요 ㅠㅠ'식으로 걱정과 두려움으로 섞인 댓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이런 인과관계가 엉망진창인 실험은 결코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 때로는 잘못된 가설이나 근거없는 믿음으로, 때로는 진실을 알면서도 악의적으로 왜곡된 결론을 도출하는 실험은 횡행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발명의 아버지로 알고 있는, 위인 전기로 한번 이상은 접했을 법한 에디슨도 이런 고약한 실험에 집착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발명한 직류 전류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그는 숱한 고양이를 교류 전류로 태워 죽이는 실험을 했다.(링크)
게다가 이러한 괴담의 증폭은, 독자들의 기존 지식과 결부되어 더 큰 소용돌이를 만들게 된다. 쉽게 말해, 누구나 한번쯤은 화장지나 기저귀 등에 사용된 형광증백제와 그 폐해에 대해서 들은 바 있을 것이고, 이러한 사전 지식이 사람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비판 회로를 틀어막아 버리는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화학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거나 과학에 관심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카더라 통신'만 믿고 실험을 그대로 반복하여 그 결과를 포스팅한 블로거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그보다는 '요오드로 형광증백제 검출 실험이 가능하다'는 괴담을 퍼뜨린 장본인이 누군지 급 궁금해진다.

그리고 제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잡을 목적으로만 공부하지 마라. 먹고살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잖니?
오래돼서 까먹었다는 비겁한 변명 하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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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notherthinking.tistory.com BlogIcon 열심히 달리기 2009.11.19 14: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랬군요. 대충 그냥 주는 화장지가 나쁠거라고는 의심은 했지만,
    실험 방법에 이렇게 커다란 오류가 있었다면, 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는데요.
    어떻게 보면, 포스팅을 악의로 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지지만, 이렇게 안내성 포스트를 하는 경우에는 잘 알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네요.

    오비이락...이 조비이락으로 바뀐 건가요??
    하긴 까마귀나, 새나.. 날자마자 배떨어지면 의심할 만 하죠...^^

    • Favicon of https://overock.tistory.com BlogIcon oveRock 2009.11.19 15: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비이락입니다 ^^
      烏와 鳥는 가운데 눈깔이 있냐없냐 차이죠 ㅎㅎ
      영문 아이디도 그래서 oveRock, o.v.e.Rock입니다 :)

      그리고 제 글의 어떤 부분에도, 사은품으로 흔히 사용되는 화장지가 형광제로부터 자유롭다고 증명하거나 주장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원 포스팅의 저자가 악의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왕래하고 여론이 쉽게 형성되는 인터넷이란 공간에서는, 대중의 사전 지식이나 막연한 공포감을 결부시키는 것은 의도하든 않든간에 삼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이미 대중의 불안감을 미끼로 청와대까지 입성한 설치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응?)

  2. 백번동감합니다 2009.11.19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어떤 학생은 합성세제 잔뜩 풀어놓은 물에다가 금붕어 넣어 놓고는 금붕어 죽었다고. 이렇게 세제는 몸에 안 좋다고 포스팅 해놓았더군요. 사람들이 그러면 그 농도로 인삼우린 물에 넣어봐라 죽나안죽나? 이렇게 반박하여 아무 말 없이 자진 삭제 하였더군요. 인터넷 블로깅이 대중화된 시대에 우리는 더욱 더 정보에 신중하여야 할 필요가 있으리라 봅니다. - 저 학생도 그렇고 화장지 실험한 어른도 그렇고... 아마 아무 말없던 것처럼 포스팅 삭제 하겠죠? 자신에겐 아무 잘못 없다는 듯이... 책임지지 못할 말을 마구 쏟아놓고는요.

    • Favicon of https://overock.tistory.com BlogIcon oveRock 2009.11.19 1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 결국 그 학생은 세제가 인체에 유해하냐 무해하냐를 떠나 잘못된 실험 방법으로 접근을 했나 보군요... 그 학생이 초등학생이었다면 너무 분개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ㅎㅎ 언젠가는 올바른 실험 방법론에 대해 배우게 되겠죠. 나중에 이 나라의 기술인재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뭐 어쨌든, 저마다 살기 좋은 환경이 어쩌고, 올바른 세상이 저쩌고... 원칙에는 공감합니다만, '어쨌거나 아직 형광제를 포함한 휴지가 많을거아냐!'라는 결론으로 실험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그네들이 말하는 [살기 좋은 세상]은 결코 오지 않을겁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런 뉘앙스의 댓글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하는군요)
      그들이 손가락질하는 정치인이나, 비양심적인 기업이나 본인들이나 과정보다는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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